K팝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은 전 세계 어느 음악 시장이나 비슷하지만, 그중에서도 우리와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시장의 반응은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 ‘한류’라는 열풍이 일찍이 불었던 이 나라는 요즘 한국 아이돌 중 ‘될성부른 떡잎’에 발 빠르게 관심을 갖고 있다.
데뷔도 전인데…제로베이스원·엔싸인, 日 팬덤 이미 확보
아직 국내에서 정식 데뷔 전인 그룹 제로베이스원(ZB1)과 엔싸인은 이미 일본 K팝 팬들 사이에서 이슈다. 두 그룹의 공통점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것. 이미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멤버들의 서사가 쌓인 터라, 일찍이 팬덤이 형성됐다.
그중 그룹 제로베이스원은 지난달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케이콘 재팬’에서 큰 관심을 얻었다. 사전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한 두 팀에게만 주어지는 스페셜 아티스트 부스를 제로베이스원이 다른 선배 가수들을 제치고 얻었고, 팬들과 만나는 ‘밋앤그릿(MEET&GREET)’ 행사를 순식간에 매진시켰다. 데뷔 전인 신인 아티스트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일본 팬들이 몰린 상황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채널A ‘청춘스타’를 통해 얼굴을 알린 엔싸인은 일본인 멤버를 향한 일본 현지의 관심이 먼저 불이 붙어 프리 데뷔 활동도 일본에서 하게 된 사례다. 이미 일본 5개 도시를 도는 제프 투어(Zepp tour)를 소화했고, 일본 팬미팅을 전석 매진시켰다. 일본 OTT 아베마의 특별 버라이어티 ‘엔싸인 티브이(n.SSign TV!)’가 제작되기도 했다.
보이넥스트도어도 데뷔 직후부터 일본에서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브 신인’이라는 타이틀로 잘 알려진 이들은 다음 달 17일 일본의 유명 방송국 J-WAVE의 행사에 섭외됐다. 슈퍼플라이, 시샤모, 퍼퓸 등 일본 유명 아티스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리에 보이넥스트도어가 초청된 것은 일본 현지에서의 관심을 방증한다.
일본 음악 시장에 정통한 연예 관계자 A씨는 이 같은 K팝 신인 아이돌에 대한 일본 팬들의 관심에 대해 “일본 여중고생들 사이에서 K팝 문화를 빨리, 많이 알면 ‘인싸’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K팝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A씨는 “최근 한국 아이돌을 향한 일본 투자사들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졌다. 일찍이 인기가 있을 법한 신인을 데뷔시키는 회사들에게도 발빠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K-라벨’ 붙은 현지 아이돌 제작 자리매김
일본 음악 시장 속 K팝 소비자들의 니즈를 더욱 세밀히 겨냥하기 위해 K-라벨을 붙인 현지 제작 아이돌들도 더욱 많아지고 있다. 주로 대형 기획사들이 시장에 진출한 경우다.
JYP엔터테인먼트가 일본 소니뮤직과 협업해 제작한 그룹 니쥬(NiziU)가 대표적인 예시다. 니쥬는 JYP가 K팝 제작 시스템으로 만든 그룹이지만, 멤버 전원이 일본인이고 일본 시장에서 활동한다. 또, 앤팀(&TEAM) 역시 하이브가 일본에서 현지화해 만든 다국적 보이그룹으로, 대다수 일본인 멤버로 구성됐다.
이들이 현지 시장에서 올린 성과를 들여다보면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니쥬는 데뷔 첫 해부터 지난해까지 매해 일본 레코드 대상,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 일본 골드 디스크 대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며 인정받았다. 일본판 ‘프로듀스 101’ 출신의 한일 공동 제작 그룹 JO1도 MTV, 골드디스크 어워드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글로벌 가요기획사 관계자 B씨는 “K팝 아이돌 제작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일본 현지 아이돌의 경우, 기존 일본 음악 시장에서의 콘텐츠 소비 패턴과 조금 다르다. 무대 영상, 뮤직비디오 등의 영상 조회수가 유달리 높은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B씨는 “대형 기획사들이 현지에서 제작하는 아이돌의 경우 ‘유명 아이돌 그룹 XX의 동생 그룹’이라는 수식어로 일찍이 일본 내 K팝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관심을 얻는다”며 “유명 그룹을 제작한 K팝 기획사의 브랜드 파워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고 이야기했다.